2002 정소연 전 – 미술과 담론 (Art & Discourse) 리뷰 _ 이선영

정소연 전 (4/3–4/23 , 이화익 갤러리)

이선영

‘달콤한 약’이라는 전시부제가 붙은 이 전시는 앙증맞고 귀여운 오브제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서구 금발미인을 모델로 한 바비 인형 위에 웨딩 드레스와 한복이 걸쳐있고(인형의 집), 고무 찰흙으로 된 구피나 미키마우스같은 디즈니 캐릭터들이 몇 상자 있으며(동물채집), 번쩍거리는 금장 접시에 장식 구슬 등으로 푸딩 형태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확대된 약 캡슐 안에는 쵸코볼이 들어있다.
여러 가지 오브제들이 동원되지만, 작품들은 일관되게 상품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상품화가 두드러진다. 작은 전시장에는 인형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섹스화부터 음식물로 나타나는 은밀한 성적 은유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이 육체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표현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사물을 생산하듯이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생산하며, 또 이렇게 해서 생산된 관계가 사물과 똑같은 자격으로 곧바로 소비의 대상이 된다.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이기에, 대중은 단순히 응시하는 것 만으로도 기호의 질서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정소연의 작품에 나타나는 성 역시 자연이 아니라 특수하고 지배적인 문화의 기호체계로 나타난다. 이 체계 속에서 주체들은 특정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성 기호들을 반복한다. 여성은 표상이며 물신화된 대상이자, 상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전시의 가장 큰 작품인 등신대의 바비 인형 이미지와 의상은 가히 신부 쇼핑의 경지에 이르렀다. 작가는 상품화 형식을 차용함으로서 지배적인 표상presentation의 영역을 드러낸다. 그녀는 표상이 진리나 자연에 바탕한 자명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축된 것임을 강조한다. 광고나 상품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제도는 의미의 공통적 표현을 공식화하고 표준화 하는데 결정적이다.
사회학자들은 상품이 문화의 범주를 가시적이고 안정되게 만드는 의미의 전달자라고 지적한다. 상품이란 그저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커뮤니케이터인 것이다. 미디어를 통하여 사회의 기본적인 목표에 합당한 신화들을 영속화된다. 광고는 물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소연은 매력을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서의 광고와 달작지근한 상품의 면모를 강조함으로서, 변화보다는 편입을 주장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성을 대표하는 상품형태는 매음, 결혼, 가사일, 노동 등을 포함하는데, 이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억압적인 사회관계를 은폐하고 있다. 소비 생활을 통한 행복의 가상에 여성과 섹스는 필수적이다. 이 환상적 관계 속에서 남녀의 자아가 구축된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여성의 객체화를 통해 동시에 남성의 주체화 과정 역시 암시한다. 지배적 표상의 역사 속에서 문화는 가부장제의 자아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상품의 형식으로 연출된 광경은, 가부장적으로 구성된 의미화 체계 속의 어떤 균열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절망적인 것이다.

-미술과 담론(Art & Discourse)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