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Art Spectrum 2006 작가와의 인터뷰 2006 _ 정리 : 오승희 (LeeUMn 삼성 미술관)

Art Spectrum 2006 작가와의 인터뷰

오승희 : <Welcome to My House>에서 당신은 작가의 스튜디오이자 일상 생활이 벌어지는 뉴욕의 한 아파트 안을 보여준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작업에 이루어지는 이 공간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정소연 : <Welcome to My House>는 내(작가)가 살고 있는 뉴욕 아파트의 ‘실제 방 안의 모습’과 ‘창에 비친 방’, ‘방 안에서 내다본 창 밖’의 풍경을 3개의 비디오 영상에 담아 유리 창에 투사한 작품이다. (리움 전시에는 이 중 두 개의 영상만 프로젝션 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세 개의 창을 가지고 있는 나의 조그만 아파트 공간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놓음으로써 그 방의 생생함과 더불어 구체적인 공간감을 전달하려고 했다. 관객은 나(작가)와 함께 사적인 공간과 일상을 경험한다. 관객은 내(작가)가 열어놓은 사적인 공간과 시간을 훔쳐보지만 여전히 “관찰자”의 시각을 벗어날 수는 없다. 사적인 시공간에 의해 뒤섞여버린 주체와 객체의 모호함이 존재하지만 실제 공간에 거주하는 관객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창에 비친 영상을 통해 관객을 바라 보는 작품이다.

오승희 : 위의 작품은 싱글맘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생활하고 있는 작가의 바쁜 일상을 강박적으로 빠르게 보여주며, 또 다른 작품인 <Trace-NY>에서도 뉴욕의 거리를 고속으로 찍은 영상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이 작품들은 어떤 시간, 속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정소연 : 나는 속도에 대한 강박을 <Welcome to My House>와 <뫼비우스 띠>의 싱글채널 동영상 작업, <Trace-NY> 의 다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 등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각 작품은 우리(인간)가 물리적으로 느끼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알레고리이다. <뫼비우스 띠>의 속도는 내 발걸음의 속도로 편집되어 있다.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움직이는 내 발걸음과 내레이션이 이미지의 진행에 따라 보여진다. <Trace-NY>는 더욱 빠르다. 이것은 인간의 속도가 아닌 기계의 속도이다. 이것 또한 끊임없이 순환한다. <Welcome to My House>는 “실제 공간” 과 “심리적 시간”을 결합시킨 작품이다. 이 세 작품 모두 내가 경험한 특별한 시간과 공간의 기록이며 흔적(trace)이다. 이번에 출품할 40 여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Trace-NY>의 영상들은 시간과 공간의 드로잉이다. 각 모니터들에 상영되는 이미지들은 다시 하나의 전체가 되어 <Trace>를 구성하는 더 큰 단위의 순환을 형성한다.

오승희 : 뉴욕의 거리 풍경을 비디오 화면에 담은 <Trace-NY>는 작가의 편집 기술과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는 색감, 속도, 형태 등이 매우 인상적이다. 당신은 멀티 또는 뉴 미디어를 능란하게 다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미디어의 기술을 작품에 도입하게 된 계기, 그럼으로써 말할 수 있게 된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한계들에 대해 알고 싶다.

정소연 : 시간과 공간은 미술의 오래된 화두이다. 멀티미디어 기술이 미술에 적용되면서 “시간성”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미디어 아트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소재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작가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전통 매체 미술과는 다른 차원의 예술적 자유를 얻게 해주었고, 작가들은 이를 적극 수용하여 표현의 영역을 넓혀왔다.
내게 디지털 기술과 영상 매체들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없고,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어 주었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인간의 눈으로 1/29.97 초의 이미지들을 식별할 수 있으며(<세수-나르시시즘>이나 <Changing Images>와 같은 작품들에서처럼), 어떻게 인간의 눈이 1년 동안 24시간 내내 남의 집 정원을 같은 위치에서 관찰하며 기록하고, 한 위치의 하늘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움직이지 않고 바라 보며 기록할 수 있을까?(<The Past, The Present>에서처럼). 폐쇄회로 카메라(CCD Camera)는 내 눈을 빼서 어떤 곳에 갖다 놓은 것과 똑 같은 효과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관찰이 진행되는 공간에 가지 않아도 편안하게 집에서 모든 동정을 다 살필 수 있었고, 그 곳의 날씨까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마당에 널어 놓은 그 집의 빨래가 온통 비에 젖는 것도 내 집에 앉아서 감상 할 수 있었다.) 나는 미디어를 이용해 작업하면서 시간을 조작하고, 조합하고, 미시적, 거시적으로 들여다보고 만지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디지털 미디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로서의 한계 상황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미디어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의 가장 아쉬운 점 두 가지는 아마도 누구에게나 “기술”과 “돈”일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부족 할 경우엔 머리 속에서만 작업을 한다. 언젠가 남들이 보게 될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

오승희 :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성별은 어느 만큼의 중요성과 무게를 갖는가? 또 후기 구조주의의 여러 미학적 담론들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작품에 때때로 소재로 등장하는 것 같다. 이론의 시각적 실현에 대한 실험이랄까, 도전에 당신은 어떤 매력을 느끼고 있는가? 여러 이론들 중에서 특별히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대변하는 이론이 있다면?

정소연 : 여성의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체험이다. 최근 작품인 <Welcome to My House>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나의 만 열 두 살 먹은 아들은 1997년도 작품인 <동물채집> 등의 제작에 있어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다. 나의 관찰 대상 1호인 아들과의 관계와 양육의 시간 속에서 현대인의 일반적인 모습들과 시대의 담론들의 연결 고리들을 발견한다. 모조가 실재를 대치해 버리는 하이퍼리얼한 경험들, 또 그 자전적 과정들은 나의 지난 작품들에 다양한 색채로 담겨져 있다 (보드리야르). 또한, <Welcome to My House>에서 다시 한번 언급된 시선의 주체와 객체, 관음증과 욕망에 대한 사유들도 본인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 왔다 (라캉) (<욕망을 보는 눈>, <물 안과 밖>등의 작품 등에서). “이론의 시각적 실현”은 작가의 업이다. 내게 작품의 실현은 개인사와의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에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투입에서, 잡다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아이의 양육과 관련된 일들에서, 지루한 수(手)작업의 인내의 시간에서, 또 때로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었다고 할 만큼 새로운 장비의 구입에서도 이루어지기도 한다.

오승희 : 당신은 ‘탈장르의 작가’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매체와 소재를 다룬다. 특히 오브제 작품들과 멀티미디어를 사용한 작품은 동명이인의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로 착각할 만큼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다방면으로 펼쳐지는 작가의 관심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그릇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의 능력과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관심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런 느낌에 대해 작가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정소연 : 디지털 매체가 본인에게 매력 있는 대상임은 분명하나 영상과 뉴미디어 매체가 아닌 장인적인 수작업과 정교한 오브제 작업으로만 표현 가능한 주제들이 있다. 나는 영상,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작업과 동시에 수공 오브제 설치 작업도 병행한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두 종류의 작업 모두 내게 소중하다. 수 작업은 때때로 말할 수 없이 지루한 단순 노동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작업들은 그 자체로 내 작품의 예술적 컨셉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부드럽고 따스한 욕조와 그 허물>등의 뜨개질 작업이나 깃털 사다리 작업 등에서 보여지듯, 반복적인 수작업과 공들임을 강요하는 시간의 흐름은 본인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제가 된다. 나의 오브제 작업들 중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논의되었던 작품들이 많은데, 이는 그런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주제와 소재들의 특성과 개인사적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실리다 보니 그러한 맥락으로 읽혀진 작품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오승희 : 마지막으로 미디어 아트의 향방과 당신의 작업의 방향이 어떤 점에서 서로 만나고 전개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정소연 : 기존의 전통 매체와는 다른 미디어 아트의 특징 중 하나가 관객과의 소통 방식의 차이 일 것이다. 소극적 방식의 인터렉티브에서 부터 관객이 작품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방식의 인터렉티브까지 인터렉티브 아트의 향방은 매력적이다.
진부한 얘기일 수 있으나 나는 새로운 차원의 소통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관객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가상과 실재, 공간의 편재(遍在), 또는 시간의 편재 (즉, 공간적, 시간적으로 동시 다발적 소통-여기에서 시간의 편재는 다양한 시간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등으로 관심을 넓혀 갈 수 있다. 여기에는 기술적 발전뿐 아니라 개념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새로운 매체의 미술적 적용과 더불어, 복제가 불가능한,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방식의 정교한 수 작업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나갈 것이며, 미술 작품의 새로운 존재 방식과 소통, 새로운 유통의 방식 등으로 생각을 확장시켜 가려고 한다.